나는 어떠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가.
여자 화장실이나 목욕탕은 그 본래의 생리적인 목적 이 외에도 여자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데 큰 가치를 갖고 있다.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네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쏠쏠한 재미를 주어, 가끔 한가할 적엔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요량으로 손을 오래 씻기도 하고 머리를 오래 말리기도 한다. 그리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 하구나 하며 웃고 나오는 것이다.
어제 헬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.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, 어떤 아주머니가 친구에게 남편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. 어제 남편이 바지를 하나 선물했다는 것이다. 그런데 그 바지가 28 인치. 그녀가 29 인치를 입지 28 인치는 못 입는다고 하자, 남편은 그럼 살을 빼서 입든지 말든지~ 라며 미운 소리를 했다고 열을 내셨다. 그러면서 그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, 남편이 할 것 (예쁨 받을 일) 은 다 하고도 말을 밉게 해서 밉다는 것이었다.
시대가 변했다 하기도 새삼스러운 요즘이다. 표현하지 않는 것, 혹은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내용을 변질 시켜버린다. 표현하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지 않는가.
귀국 한 후로 나는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면 안아 달라고 한다. 자기 전에도 한 번 꼬옥 안았다. '안아 주는 것'도 아니고 '안기는 것'도 아니지만, 엄마를 안아 드리면서 동시에 엄마에게 안긴다. 보호받는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서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 가슴이 든든한 일이다. 오늘 아침엔 굳이 괜찮다며 설걷이 하는 엄마께 안마를 해 드렸다. 9개월간 그리운 것이 있었다면 이런 소소한 가족간의 사랑 표현이었다.
마음껏 안아주고, 마음껏 사랑해야지.
할 수 있을 때.
